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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도락 블로거들에 대한 단상
  잠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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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평균적으로 1회 이상은 일본에 가게 된다.
(이유야 여러가지인데, 일단 전액 자비부담이다. oTL)
피 같은 돈 들여 갔으면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녀도 부족할 노릇인데,
정작 일본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현지의 TV프로그램 및 광고 시청.
그래서 가끔은 한국에서도 아프X카 접속해서 일본 실시간 공중파 방송을
틀어놓곤 한다. 이걸 우리 부부는 '일본놀이'라 명명했다.
어쨌거나… 일본 TV를 보다 보면 먹부림(구루메) 관련 프로그램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이야 한국의 공중파에도 채널 당 하나 이상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상시 방영되고 있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그만큼 그들은 먹는 것에 집착하고, 또 즐기는 편이다.
(물론 음식의 레벨을 비교하려는 의도는 없다)

한국의 식도락 문화, 그 중에서도 블로거들의 식도락 기행 문화는
놀랍도록 일본의 구루메 프로그램과 닮아 있다. 혹은 요리 만화와도…
블로거들은 식재료 본래의 맛, 그리고 그 맛을 최대한 살려내주는
요리 방식에 대해 고집스러울 만큼 집착하는데, 사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평가기준을
소위 '손맛'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요리세계에 100%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맛이라는 게 다분히 주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접하는
맛의 최고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접할 수 있는 모든 요리를 그 기준으로 판가름한다.
여기서 그치면 괜찮은데, 몇몇 블로거들의 경우 그 가치에 미달되는 요리를 즐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그저 '생명 유지를 위한 영양 섭취'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외국 나가서 한식 찾는 게 뭐 어떤가. 데쳐 먹는 게 볶아 먹는 것보다 맛있다는데
뭐라고 타박하겠는가. 맛이라는 건 철저히 주관적이다. 물론 잘못된 절차를 밟아
재료가 변질되어 인체에 해를 입힌다면야 잡아낼 만하겠지만, 그건 이미
수용자의 입장을 떠난 생산자, 제조자의 임무.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엄격한 잣대만 들이대서는 안될 노릇이다.
유야무야 성향이 강한 한국 요식업계의 특성 상, 그 요리에 대해
알고 받아들이는 건 모르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소비행위가 될 수 있다.
식도락 블로거들은 그런 현실에 있어 위대한 선구자들이다.
조금 오버스러울 수도 있지만, 옛 중국 신화에서 신농씨(神農氏)는
스스로 모든 약초를 먹어보고 그 이해(利害)를 인간에게 전해주지 않았던가.
극소수의 식도락 블로거들이 그 숭고한 행위의 뒤에 숨겨진 이른바 '먹거리 계의 경찰'
역할에 눈 멀어 요식업계 종사자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경우가 왕왕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분명 수용자들에게 있어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음식 수용자들을 '계도'하려 들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
섬나라 모 신문의 어떤 '자칭' 선각자가 비빔밥을 일컬어 양두구육이라 망언한 게
바로 그 계도의 전형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문화, 그 중에서도 식문화는 가장 주관적인 영역이리라.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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